빗속에서
최고관리자2023-05-10 21:37

차가운 빗줄기가 쏟아지는 차가운 길바닥 위에 조막만 한 새끼고양이가 늘어져 있었다. 아스팔트 도로 위 한구석에서 차갑게 식은 작은 짐승을 보자마자 다희는 계시라도 내린 듯 치마폭에 감싸 안은 채 걸음을 서둘렀다. ‘집’에는 그 무엇도 들이지 않는단 약속을 어기는 짓이었지만 도저히 외면할 수 없었다. 말 못 하는 작은 짐승은 세상에 나온 지 석 달도 채 되지 않았을 게 틀림없이 자그마했다. 한눈에 봐도 앳된 자그마한 몸집이 안타까움이 더욱 컸다.
저녁 어스름을 등에 이고 숨도 쉬지 않는 아이를 데리고 들어가자 뾰족한 시선이 날아왔다. 규칙을 어긴 구성원에게 보내는 소리 없는 질타를 향해 다희가 항변했다.
“너희는 내 목숨만 중요하고 남은 죽든 말든 상관없단 거야? 얘도 우리처럼 연약해. 보호해줄 엄마가 있었다면 적어도 길바닥에서 죽어가게 내버려두진 않았겠지!”
“약속은 약속이야. 네 동정심에 여기 있는 모두가 위험해질 수도 있다고.”
연후가 단호하게 말했다. 다희는 따가운 시선에 어깨가 조금 움츠러들었지만, 순순히 물러서지 않았다. 바람 앞의 촛불 같은 목숨인 건 이 아이나 저나 크게 다르지 않다. 열세 명이 숨죽여 사는 은밀한 도주 생활에 동물을 기를 여유 따위 없음을 안다. 그럼에도 다희는 숨이 꺼져가는 이 작은 생물을 살리고 싶었다.
“도와줘.”
“…기껏 데려왔는데 하는 수 없지. 어디 상태 좀 보자.”
해인이 나서서 고양이를 건네받았다. 차갑게 얼어붙은 몸에 외상이 있는지 살피고 바닥에 눕힌 뒤 멈춰버린 심장이 다시 뛰게끔 조치했다. 너무 늦은 것이 아니길 바라며 입에 숨을 불어넣고 압박하고, 다시 숨을 넣고 가슴을 압박하길 여러 번, 마침내 몸을 떨며 고양이가 깨어났다. 해인은 손끝으로 짐승의 가슴에 도형을 몇 개 그리고 난 뒤, 뒤에서 팔짱을 낀 채 쳐다보고 있던 윤아에게 따뜻한 물이 담긴 병과 담요를 가져오게 시켰다.
“그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뭐야?”
“그냥 죽게 놔두는 것보다야 살릴 수 있는 한 살려보려고 그랬어.”
“설마 태평하게 우리가 키우자고 할 건 아니겠지? 상아가 반대할 거야.”
해인은 대꾸하지 않고 치마폭을 찢고서 데운 물에 적셨다. 체온을 잃지 않을 만큼 더러움을 닦아내고서 장작불이 타오르는 난로 가까이에 담요를 깔고 놓아두었다.
“생기를 북돋워주었으니 며칠 지나면 건강해질거야.”
“고마워 해인아. 상아에겐 내가 잘 말해놓을게.”
“그럴 필욘 없어. 내가 하고 싶어서 한 거니까 상아에게 둘러대지 않아도 돼.”
연후와 윤아를 비롯한 열 명의 아이들이 탐탁치 않단 표정을 지으며 둘을 쳐다보았다. 고향 아닌 바다 건너 이역만리 낯설고 추운 땅에 와서 남의 눈에 띄지 않게 깊은 숲속 버려진 외딴집에 숨어 사는 처지에 손이 많이 가는 어리고 약한 동물을 데려오다니. 아차 하면 꼬리가 밟힐 테고 그러면 삭막하고 고통스러운 연구실로 돌아가거나 이 자리에서 폐기당하고 말 것이다.
때마침 상아가 계단을 타고 1층으로 내려왔다. 뻣뻣하게 굳어있는 다희와 해인을 지나쳐 난로 앞의 작은 짐승을 살펴본 상아가 말했다.
“하는 수 없지. 데려온 사람이 끝까지 책임지고 돌보도록 하자. 대신 두 번은 봐주지 않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