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탄의 봄
최고관리자2023-05-10 21:36

길모퉁이를 돌다 마주친 라일락은 보랏빛으로 피어나는 중이었다. 바로 위의 벚나무에선 만개한 벚꽃이 잔바람에 눈처럼 흩날렸다. 기묘한 조화였다.
있어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났다고들 얘기했다. 이렇게 한꺼번에 꽃이 피면 벌들이 굶어 죽는다고 걱정하는 사람들의 발밑에 일회용 플라스틱 컵이 뒹굴었다. 언제나 수북한 쓰레기통과 후끈한 공기를 식히는 에어컨의 인공 바람. 공장에서 찍어낸 손바닥만 한 기계에 고개를 박고 수군거리는 유리 상자 속 사람들.
며칠 전 이 길에서 차에 치여 죽은 고양이를 보았다. 그 이전에는 납작하게 짓눌린 참새를 보았다. 시속 100킬로미터로 질주하는 차에 치여 처참하게 뭉개진 고라니를 보았다.
꽃이 만개했는데도 벌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해가 지날수록 나비조차 보기 힘들다. 편의점 담배 진열장은 계절이 바뀔 때마다 알록달록 새 상품을 늘어놓고 옷가게의 마네킹들은 벌써 여름옷으로 갈아입었다.
오토바이와 자동차가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아스팔트 도로를 점령한다. 불완전연소한 석유의 악취와 매연을 뿜어댄다. 길마다 반질반질하게 코팅된 전단지가 흙 묻은 발에 짓밟혀 들러붙었다. 담배냄새가 코를 찌른다. 누군가의 짧은 즐거움을 위해 만들어진 공산품이 줄줄이 늘어서서 시선을 사로잡는다. 살찌고 발가락 하나를 잃은 비둘기가 뒤뚱뒤뚱 걷는다.
부조화를 이루는 세상에는 부조리도 불합리도 까맣게 잊어버린 사람들이 흘러넘친다. 탄식마저 짧은 감탄사가 되어버린 세상은 점점 더 빠르게 뜨거워지고 제일 아래에 있는 것부터 하나씩 하나씩 불길 속으로 사라진다.
라일락의 보랏빛 절규는 누구의 귀에도 닿지 않는다. 세상이 무너져내리는 소리는 인간의 귀에 들리지 않는다. 구르기 시작한 수레바퀴는 부서지기 전에는 멈추지 않는다. 비탄의 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