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2
최고관리자2022-12-31 11:47

널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나는 우리가 최악의 한 쌍이란 걸 알 수 있었어. 넘칠 만큼 사랑받고 자란 너와 집안의 눈엣가시였던 나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든 게 달랐으니까. 네 그 환한 미소가 너무나도 역겨워서 토할 뻔했단 건 알았으려나. 어쩌다 너 같은 녀석이랑 6년을 같은 방을 썼는지 모르겠다. 젠장 6년이라니 중고등학교 다닌 햇수랑 맞먹잖아!
알록달록하게 꾸며진 방의 절반이 늘 끔찍했어. 너는 그 풍부한 색채에 휩쓸려서 죽고 싶었던 모양이지? 나는 늘 개의 눈이 부러웠어. 그 녀석들은 흑과 백으로 세상을 보니까. 다채로운 세상 따위 나에겐 구역질 나기만 할 뿐이라고. 네 캔버스에 담긴 알록달록한 우스꽝스러운 내 모습은 정말인지 형편없었어. 왜 하필 날 그렸지? 왜 내게 그따위 형편없는 밝은 색조를 입혔지? 따져 물어도 너는 네 마음이 그렇게 시켰다는 같잖은 말만 내뱉었어. 그러고서 내게 입 맞춘 너에게 뺨따귀를 날리지 않은 건 지금도 정말 후회스러운 일 중 하나야.
졸업식 날 아침에 내가 말했었지. 이제 평생 만나지 말자고. 너 같은 놈은 정말 지긋지긋해서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고. 그런데도 넌 정말 한결같이도 내 말을 듣지 않고, 이렇게 다시 내 앞에 나타났어. 그것도 그날부터 딱 6년 만에.
“그 고운 얼굴을 왜 자꾸 찡그리는 거야?”
“정말 몰라서 묻나?”
굵은 눈발이 폭풍처럼 흩날리는 가운데 네게서 풍기는 매화 향기가 아득해서 죽고 싶어져. 왜 날 찾아온 거야. 너 같이 희망의 빛으로 가득 찬 바보 녀석은 내 삶에 끼어들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정말 많이 보고 싶었어. 일라이저 데일.”
“좋은 말로 할 때 저리 꺼져, 벤자민 루크.”
나는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지 않단 말이야.